
[데일리엔뉴스 이종성 기자] 수원시가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독립운동가 김노적, 이현경을 포함한 7인의 포상 신청을 국가보훈부에 제출하며 지역 독립운동가 발굴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원시는 지난 2010년 이선경의 애국장 수훈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13명의 수원 출신 또는 연고 독립운동가를 직접 발굴하고 후손 대신 포상을 신청했다. 시는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자료 부족이나 후손 부재로 서훈을 받지 못했던 독립운동가의 공로를 되살리고 있다.

횃불시위 주도한 김노적, 여성운동의 선구자 이현경
수원의 대표적인 항일 인물 김노적(1895~1963)은 1919년 3·1운동 당시 방화수류정 앞 횃불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돼 혹독한 고문을 받고 불구가 됐다. 이후에도 수원학생친목회를 조직하고, 신간회 수원지회 초대회장을 맡는 등 지속적으로 민족운동에 힘을 보탰다.
이현경(1899~미상)은 ‘수원의 유관순’이라 불린 이선경의 언니로, 1921년 도쿄에서 만세운동을 벌인 뒤 조선여성동우회, 근우회 등 여성단체 활동에 헌신했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했으나 생애 후반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아, 오랫동안 포상에서 누락돼 왔다.
수원시는 향토사, 재일조선인 기록, 신문 보도 등 다양한 자료를 근거로 이들의 활동을 보강해 올해 포상을 신청했다.
일제 치하에서 저항한 다섯 명의 이름도 다시 불러내다
함께 포상을 신청한 문용배, 윤경의, 임학수, 정재억, 최병두는 대부분 일제 하 체포된 기록과 판결문이 남아 있어 공적 입증이 가능한 사례다.
특히 최병두는 일본인의 차별에 항의하며 벽에 ‘천황은 바보’라는 낙서를 남긴 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일화로 주목된다. 수원 출신의 10대 청소년이었던 그는 조용한 저항으로 민족의식을 표현했다.
정재억은 광주고보 재학 중 학생운동을 주도했으며, 임학수는 경기중학교 재학 중 사회주의 독립운동 조직을 만든 혐의로 수감됐다. 이들 모두 개인의 이름으로는 잊힐 수 있었지만, 시의 조사와 기록 덕분에 독립운동사에 다시 편입되고 있다.
‘기억의 시정’, 수원시의 독립운동가 발굴 15년 성과
수원시의 독립운동 인물 찾기 사업은 2009년 대통령표창을 받은 김향화부터 시작됐다. 2012년에는 이선경이 애국장을, 2019년에는 15명의 포상 신청 중 9명이 서훈을 받는 성과를 거뒀다.
수원박물관은 독립운동 관련 기획전과 학술대회를 통해 지역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2017년에는 수원학연구센터와 함께 113명의 신규 독립운동 인물을 발굴했다.
수원시는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 국가보훈처 등과의 연계를 통해 문헌과 증언을 확보하고 있으며, 후손이 없는 인물은 시가 직접 포상을 신청해 공적이 묻히지 않도록 하고 있다.

홍영유·한인택…포상 받은 이들도 다시 조명
작년 포상을 받은 홍영유와 한인택 역시 수원시가 신청을 대행한 인물이다.
홍영유는 중앙고보 재학 중 사회주의 독서모임을 만들고, 직접 인쇄한 격문을 학교에 배포하다 체포돼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한인택은 ‘소척대’라는 비밀결사 조직을 꾸려 항일 출판물을 발간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이들의 투쟁은 체계적인 항일운동이었음에도 오랫동안 역사 속에 묻혀 있었지만, 수원의 지속적인 조사를 통해 그 공로가 복원됐다.

“숨은 독립운동가, 끝까지 발굴해 기록할 것”
수원시 관계자는 “공적은 있으나 후손이 없거나 기록이 부족했던 독립운동가들이 많다”며 “앞으로도 발굴·조사·기록·포상 신청까지 행정이 책임지는 구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는 올해, 수원은 ‘잊지 않는 도시’라는 별명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한 기념사업이 아니라, 이름 없이 사라질 뻔한 사람들의 삶을 역사에 되살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