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일리엔뉴스 이종성 기자] 민원은 대체로 ‘불편’과 ‘시간 소모’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수원시는 이 인식을 바꾸기 위해 과감한 실험에 나섰다. 조선시대 백성이 직접 민원을 청한 ‘상언’과 ‘격쟁’을 모티브로 한 ‘폭싹 담았수다! 시민의 민원함’이 그 결과물이다. 지난 5월 1일 시청, 구청, 44개 동 행정복지센터 등 50곳에 설치된 이 민원함은 형식 없는 자유 제안 창구로, 100일간 총 1658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민원은 안전·교통(501건), 도로건설(270건), 도시환경(346건), 공원녹지(247건), 문화체육교육(86건), 복지(51건), 행정(108건), 기타(49건)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있었다. 시는 접수 당일 ‘감사의 회신’을 보내며 시민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이후 매주 민원컨설팅TF 회의를 열어 우선순위와 처리 방향을 논의했고, 각 부서와 기관이 협업해 맞춤형 해결책을 제시했다.

10년 묵은 생활불편, 100일 만에 해결 길 열다
대표 사례가 입북동 ‘벌터마을’의 수도·가스 미설치 문제다. 30여 년간 일부 가구가 지하수와 LPG 가스통에 의존하던 불편은 이해관계와 행정 절차에 막혀 해소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6월 12일 한 주민이 민원함에 설치 요청서를 넣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수차례의 현장 점검과 부서 협의를 거쳐 도로 공사와 연계한 상수관·가스관 신설이 결정됐고, 올해 안에 완공이 목표다.
이재준 수원시장은 현장을 찾아 “10년 넘게 풀리지 않던 생활 민원이 100일 만에 해결 실마리를 찾았다”며 “행정이 움직이면 변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단순 답변을 넘어 ‘완결형 행정’ 구현
수원시는 민원이 ‘납득’으로 끝날 때까지 과정을 함께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예컨대 원천동의 버스 배차·정류장 이전 민원은 1차 답변으로 개선 의지, 2차 답변으로 설치 계획과 일정을 공유해 신뢰를 확보했다. 반려됐던 수인선 상부공원 화장실·녹지 조성 민원도 재검토 끝에 ‘탄소중립 그린도시 사업’과 연계 추진이 확정됐다.
시 고유 업무 범위를 벗어난 사안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통구청에 접수된 ‘혼인신고 간소화’ 건의는 국무조정실 규제개혁 신문고를 통해 중앙부처 개선 과제로 제출됐다.

협업과 실행이 만든 변화
민원 해결에는 부서 간 협업이 핵심이었다. 교통시설 설치 민원은 시 교통정책과와 경찰서가 직접 협의했고, 환경 민원은 환경위생과가 현장 확인과 지속 관리 방안을 제시했다. 각 구청도 생활 불편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 실행력을 높였다.
수원시는 민원함 운영 경험을 데이터화해 동별 정책 수요 분석 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다. 민원 유형과 처리 결과를 통계화해 지역별 현안 파악과 정책 대응에 반영한다는 구상이다.

‘응답하는 도시’로 진화
이재준 수원시장은 “민원을 단순 처리하는 도시가 아니라 시민과 해답을 찾아가는 도시가 되겠다”며 “시민의 목소리를 정책의 씨앗으로 삼아 더 신속하고 체감도 높은 행정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폭싹 담았수다! 시민의 민원함’은 100일 동안 ‘불편’을 ‘변화’로 바꾸며 수원시 행정의 방향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그 변화의 원동력은 행정의 속도와 방식이 아니라, ‘시민이 납득하는 응답’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