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암리, 그리고 고주리… 106년 전 화성의 봄, 불타버린 마을이 증언한다

  • 등록 2025.04.14 17: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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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특례시, ‘제암리·고주리 학살’ 106주기 추모제 개최… “기억은 의무다”

 

[데일리엔뉴스 유석주 기자] 1919년 4월 15일, 경기도 화성의 제암리와 고주리에서 무고한 민간인 29명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됐다. 3·1운동 직후 벌어진 이 사건은 일제의 조직적이고 잔혹한 민간인 탄압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화성특례시는 2025년 4월 15일, 제암리·고주리 학살 106주기를 맞아 독립운동기념관에서 순국선열 추모제를 연다.

 

 

총칼과 불길 속의 마을… '4월 15일'에 무슨 일이 있었나

 

당시 수원군에 속했던 제암리와 고주리는 3·1운동의 열기가 뜨거웠던 지역이다. 이에 보복 차원에서 출동한 일본 헌병은 제암리 주민들을 교회에 모아놓고 출입문을 봉쇄한 뒤, 교회에 불을 질렀다.

 

불길 속에서 탈출하려는 주민들은 밖에서 대기하던 헌병들에게 총을 맞고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같은 날 인근 고주리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6명이 학살됐다.

 

희생자는 제암리 23명, 고주리 6명으로 총 29명. 민가 30여 채도 불탔고, 마을 전체가 폐허로 변했다.

 

일본 당국은 곧바로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고 유족들에게 함구를 강요하며 사건 은폐에 나섰다. 공포에 질린 주민들은 가족을 잃고도 울지 못했다.

 

 

전 세계가 알게 된 학살… 선교사의 카메라가 증거가 되다

 

학살 현장은 외부인의 접근이 철저히 통제됐지만, 캐나다 출신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는 사건 발생 사흘 뒤인 4월 18일, 제암리를 직접 찾아 조사했다.

 

 불탄 교회, 시신의 흔적, 울부짖는 유족들의 증언을 사진으로 남겼고, 이를 바탕으로 영어 보고서 「The Massacre of Chai-amm-ni」를 작성했다.

 

스코필드는 보고서에 “젊은 과부가 남편이 죽은 과정을 울면서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고아가 되었고, 슬픔은 계곡 전체를 뒤덮었다”고 썼다.

 

보고서는 해외 선교망을 통해 국제사회에 전달됐고, 일본의 비인도적 만행에 대한 세계 여론을 악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진실은 묻히지 않았다…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 그리고 기억의 힘

 

오랜 세월 제암리와 고주리의 비극은 침묵 속에 있었다. 하지만 지역 사회와 유족들의 노력으로 1959년 ‘순국기념탑’이 건립됐고, 1982년에는 23인의 합동묘역이 조성됐다. 1995년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상징 조형물이 설치되며 공식 기념의 장이 갖춰졌다.

 

1997년 문화재청의 주도로 순국기념관 건립 계획이 수립되고, 일본 개신교가 세운 ‘사죄의 교회당’은 철거됐다. 이후 2001년 3월 1일, 총 1만7천여㎡ 부지에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이 정식 개관됐다.

 

 기념관의 모든 전시와 증언은 지역 주민들의 구술과 참여로 이루어졌다. 이는 국가가 주도한 일방적 기념이 아닌, 시민 주도의 ‘기억운동’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추모의 상징 ‘4월 15일’… 독립운동기념관으로 이어지다

 

화성시는 2024년 4월 15일,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을 재정비해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으로 새롭게 개관했다.

 

개관일은 학살이 발생한 바로 그날로 정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적 결정이 아닌, 비극을 잊지 않겠다는 도시의 의지이자 선언이었다.

 

기념관은 제암리·고주리 학살뿐 아니라 화성 지역 전반의 독립운동사를 아우르는 콘텐츠로 구성됐다. 영상, 체험, 해설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 교육과 시민 의식 함양을 동시에 추구한다.

 

 

추모는 현재형이다… 시민의 손으로 만든 기억의 제례

 

올해 제106주기 추모제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오전에는 고주리 6인 묘역(덕우공설묘지)과 제암리 23인 순국묘역 참배가 진행되고, 오후 3시부터는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야외에서 본행사가 열린다. 행사에는 추모 영상, 유공자 표창, 유가족 기념사, 어린이합창단 및 무용단의 공연이 포함된다.

 

정명근 화성특례시장은 “학살의 진실을 바로 세우는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책무”라며 “선열들의 정신이 미래 세대에게 똑바로 전해질 수 있도록 기억하고 기록하겠다”고 말했다.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제암리와 고주리의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06년 전, 잿더미 속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름은 여전히 불리고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기억하는 시민들이 있는 한, 진실은 침묵하지 않는다. 화성의 봄은 단지 추모의 계절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를 향한 경계의 시간이다.

 

화성은 지금, 그날을 다시 걷고 있다.

유석주 기자 dbtjrwn106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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